유령선-8

2026. 10. 6. 07:04ㆍ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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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된 저녁 8시가 가까워진 시각. 3층 305호 강 형사의 객실 안.

강 형사는 중앙 테이블 위에 펼쳐놓은 [15년 전 포구 아동 사망 사건 수사 보고서]를 유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빛바랜 종이 위에는 당시 유 회장의 이름과 최 경감의 자필 서명이 또렷하게 남아있었다.

"똑똑."

정갈한 노크 소리와 함께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저 민준입니다."

강 형사는 서류를 살짝 덮고 문을 열어주었다. 편안한 옷차림의 도 형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표정은 여느 때처럼 사교적이고 무던해 보였다.

"복도 쪽은 별일 없었습니까? 승객들 사이에서 어젯밤 소문이 이상하게 퍼지고 있더군요."

도 형사가 자연스럽게 의자를 끌어앉으며 물었다. 강 형사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 위 서류 뭉치를 도 형사 쪽으로 밀어주었다.

"이거 봐라."

도 형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서류를 집어 들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도 형사의 눈동자가 가볍게 떨렸다.

"이건... 15년 전 사건 수사 기록 아닙니까? 최 반장님이랑 선배님이 신참 때 담당하셨다는..."

"그래. 오늘 누군가 내 방에 몰래 들어와 놓고 간 거다. 최 반장님은 당시 유 회장이 사건 현장 포구에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심지어 직접 조사까지 했지. 하지만 아무 이유 없이 혐의 없음으로 덮었다."

강 형사가 담배를 꺼내 물려다 말고 낮게 읊조렸다.

"어제 302호에서 난 총성, 그리고 배 안에서 들린다는 아이 웃음소리... 전부 15년 전 그 사건과 연결되어 있어. 최 반장님은 유 회장의 범죄를 덮어주는 대가로 지금의 자리에 오른 거다."

도 형사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됩니다... 최 반장님이 유 회장이랑 그런 거래를 했다니..."

"도 순경. 이제부터 최 반장 지시는 전부 형식적으로만 따른다. 우리는 따로 이 배 안의 진짜 302호 승객을 찾아내야 해."

"알겠습니다, 선배님. 저도 돕겠습니다."

도 형사가 진지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바로 그 순간.

치지직—

객실 벽면에 붙은 선내 인터폰 스피커에서 날카로운 기계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이내 나직하고 기괴한 태엽 오르골 멜로디가 스피커를 타고 스며 나왔다.

두 형사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시에 스피커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소름 끼치게 퍼지던 오르골 소리는 아주 잠깐 들리고는 이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방 안에는 다시 묵직하고 가라앉은 정적만이 적막하게 밀려들었다.

오르골 소리가 스피커 너머로 수그러들기 무섭게, 협탁 위의 내선 전화가 다시 한번 붉은 불빛을 반짝이며 날카롭게 울려댔다.

강 형사가 수화기를 들어 올리자, 수화기 너머에서 최 경감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사납게 압박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 형사. 도 순경도 같이 있지? 당장 6층 VIP 상황실로 올라와라.]

수화기가 끊어지고, 강 형사와 도 형사는 짧은 시선을 교환한 뒤 문을 열고 나섰다.

6층 VIP 복도는 이미 최 경감의 직속 보안 요원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험악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상황실 안으로 들어서자, 최 경감이 창가를 향해 서서 초조하게 줄담배를 태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옆에는 얼음주머니를 머리에 얹은 유 회장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파에 푹 파묻혀 있었다.

"오셨습니까, 최 경감님."

강 형사가 인사를 건네자, 최 경감이 휙 돌아서며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지듯 짓밟았다. 그의 눈에는 핏발이 선명하게 서 있었다.

"어제 302호 총성부터 시작해서 지금 배 안에서 벌어지는 소란들, 전부 누군가 의도적으로 기획한 사기극이자 질서 교란 행위다. 유 회장님을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려는 놈이거나, 배 안에 몰래 숨어든 청소부나 승무원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아."

최 경감이 강 형사와 도 형사의 덜미를 잡을 듯 다가와 낮게 으르렁거렸다.

"형사 둘이서 샅샅이 뒤져. 승무원 구역이든 식자재 창고든, 이딴 조잡한 장난질로 사람 피 말리는 놈을 당장 잡아서 내 앞에 가져와라. 알겠나?"

"알겠습니다. 즉시 수색하겠습니다."

강 형사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실소를 누르며 무덤덤하게 고개를 숙였다. 최 경감은 그 무시무시한 능구렁이 같은 모습을 잃고, 유령이라는 가상의 존재보다 '산 사람의 공작'이라는 틀 안에 사건을 가두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 모습 자체가 그가 15년 전 죄책감에 짓눌려 있다는 방증이었다.

지시를 받고 상황실을 나온 두 사람은 3층 객실 구역으로 내려가기 위해 통유리창으로 둘러싸인 5층 라운지 복도를 지났다.

갑자기 창밖의 풍경이 급격하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낮게 내리깐 잿빛 해무 사이로 검붉은 먹구름이 바다 전체를 덮쳐왔고, 멀리 수평선 끝에서 낮게 울리는 천둥 소리가 선체를 미세하게 울렸다.

투두둑. 투닥.

이내 거센 바닷바람과 함께 굵은 빗방울이 통유리창을 거세게 두드렸고, 순식간에 퍼붓는 장대비가 거대한 크루즈 '메모리아'호를 바다 한가운데에 완벽히 고립시키기 시작했다. 빗물에 적셔진 창밖 안개 너머로, 검은 바다가 요동치며 배를 삼킬 듯 솟구쳐 올랐다.

강 형사는 빗물이 어둡게 흐르는 창문을 내려다보며 품속의 [15년 전 수사 보고서]를 조용히 다잡았다.

15년 전 포구에 내리던 비도 바로 이런 촉감이었을 것이다. 거세지는 비바람 속에서, 진짜 폭풍우는 이제 막 배 안에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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