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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선-9
3층 복도를 수색하던 강 형사와 도 형사는 승무원 통로 입구에서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서 있던 한 선원을 마주쳤다. 형사 신분증을 내밀며 정황을 묻는 강 형사에게 선원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첫날 승객용 구역이 아닌 기관실 쪽으로 통하는 하부 복도로 누군가 들어가는 걸 봤습니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었죠. 첫날 그런 사고가 종종 발생하거든요. 따라가서 기관실 문을 열어봤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기관실 안쪽까지 들어가서 확인해 봤습니까?" 강 형사의 물음에 선원은 고개를 세게 저었다. "아뇨. 선원들 사이 금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바다에서 귀신이나 환영을 보면 그냥 못 본 척하고 돌아서야 한다고요. 괜히 끝까지 추적했다가 화를 입는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바로 문 닫고 ..
07:42:33 -
유령선-8
약속된 저녁 8시가 가까워진 시각. 3층 305호 강 형사의 객실 안. 강 형사는 중앙 테이블 위에 펼쳐놓은 [15년 전 포구 아동 사망 사건 수사 보고서]를 유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빛바랜 종이 위에는 당시 유 회장의 이름과 최 경감의 자필 서명이 또렷하게 남아있었다. "똑똑." 정갈한 노크 소리와 함께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저 민준입니다." 강 형사는 서류를 살짝 덮고 문을 열어주었다. 편안한 옷차림의 도 형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표정은 여느 때처럼 사교적이고 무던해 보였다. "복도 쪽은 별일 없었습니까? 승객들 사이에서 어젯밤 소문이 이상하게 퍼지고 있더군요." 도 형사가 자연스럽게 의자를 끌어앉으며 물었다. 강 형사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 위 서류 뭉치를..
2026.10.06 -
유령선-7
6층 VIP 전용 스위트룸. 은은한 주황빛 조명이 감도는 욕실 안에서, 유 회장은 오케스트라 클래식 음악을 크게 틀어놓은 채 얼음을 채운 위생 잔에 25년산 위스키를 넘칠 듯 따라 기울였다. 어젯밤 302호에서 울려 퍼졌던 총성, 그리고 온 배를 옥죄어 오는 짙은 안개 때문에 온몸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유 회장은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로 귀를 채우며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장엄한 바이올린 선율 틈새로, 아주 낯설고 눅눅한 소리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첨벙. ... 첨벙. 욕조 배수구와 벽면 환풍기 안쪽에서 무언가 물을 자박거리며 튀기는 소리였다. 유 회장의 손끝이 순간 굳어버렸다. 잔 속의 얼음이 잘그락거리며 진동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유 회장이 수건을 신경질적으..
2026.10.04 -
유령선-6
같은 시각, 강 형사는 3층 외부 갑판 흡연 구역에 홀로 서 있었다. 자욱한 해무가 바닷바람을 타고 갑판 위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강 형사는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 불꽃을 당겼다. 붉은 불씨가 피어오를 때마다 눅눅한 안개 속으로 흩어지는 연기를 바라보며, 잠들기 전 들었던 직원의 말이 귓전을 계속 맴돌았다. '총소리가 나고 얼마 안 돼서 아이 웃음소리 같은 게 들렸어요...' 미성년자는 탑승이 불가능한 크루즈에서 들린 아이의 웃음소리. 씁쓸한 담배 연기를 깊게 마신 강 형사는 꽁초를 수거함에 던져 넣고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3층 복도 코너를 돌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달칵. 자신의 객실 문이 살짝 열리더니, 검은 모자를 깊게 눌러쓴 사내 하나가 은밀하게 문을 열고 밖으로..
2026.10.02 -
유령선-5
"똑똑." 조용히 다가오던 발자국 소리가 멈추더니, 정갈한 노크 소리와 함께 나직한 목소리가 문틈을 넘어왔다. "선배님, 저 민준입니다." 허리 뒤 권총 집으로 향하던 강 형사의 손끝이 이내 긴장을 풀었다. 강 형사는 도어록을 해제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주었다. 문틈 사이로 서늘한 정장 차림이 아닌, 편안한 캐주얼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도 형사, 도민준이 싹싹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선배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도 형사가 가볍게 인사를 건네자, 강 형사는 긴 한숨을 내쉬며 문을 조금 더 넓혀 열었다. "도 순경, 내 방엔 무슨 일이야." "복도 돌아보고 오다가 선배님이 방에 계신 것 같아서 들렀습니다." 강 형사는 잠시 도 형사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더니, 고개를 흔들며 나직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입..
2026.09.30 -
유령선-4
동이 터 오르기 직전, 3층 구석의 빈 객실 안으로 서늘한 푸른빛이 비집고 들어왔다. 잠시 눈을 붙였던 강인국 형사가 묵직한 두통과 함께 눈을 떴다. 창문 너머 동해 바다는 여전히 짙은 잿빛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수평선조차 구분할 수 없는 아득한 안개 벽은 마치 크루즈 전체를 세상과 격리된 기괴한 무인도처럼 가둬두고 있었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이마를 짚은 강 형사의 귓가에, 잠들기 전 3층 비상계단에서 만난 직원의 떨리던 음성이 환청처럼 맴돌았다. '총소리가 나고 얼마 안 돼서 아이 웃음소리 같은 게 들렸어요... 성인만 탑승 가능한 배인데 말이죠.' 초화화 크루즈의 한복판, 그것도 실탄이 발사된 직후 들려왔다는 어린아이의 웃음소리. 단순한 환청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연출한 섬뜩한 장..
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