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선-9

2026. 10. 8. 07:42ㆍ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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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복도를 수색하던 강 형사와 도 형사는 승무원 통로 입구에서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서 있던 한 선원을 마주쳤다. 형사 신분증을 내밀며 정황을 묻는 강 형사에게 선원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첫날 승객용 구역이 아닌 기관실 쪽으로 통하는 하부 복도로 누군가 들어가는 걸 봤습니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었죠. 첫날 그런 사고가 종종 발생하거든요. 따라가서 기관실 문을 열어봤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기관실 안쪽까지 들어가서 확인해 봤습니까?"

강 형사의 물음에 선원은 고개를 세게 저었다.

"아뇨. 선원들 사이 금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바다에서 귀신이나 환영을 보면 그냥 못 본 척하고 돌아서야 한다고요. 괜히 끝까지 추적했다가 화를 입는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바로 문 닫고 나왔습니다."

미신 따위는 믿지 않는 강 형사는 선원의 말을 가볍게 흘려듣고는, 선내 중앙 승객 관리 시스템에 접근해 크루즈 전체의 예약 현황과 승선 명단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명단을 훑어내려가던 강 형사의 손가락이 특정 대목에서 딱 멈춰 섰다.

302호 — 미예약 객실 (Empty)

302호는 이번 항해에서 처음부터 아무에게도 판매되거나 예약된 적이 없는 빈 방이었다.

실체 없는 승객, 예약조차 된 적 없는 방, 그리고 그 방에서 울려 퍼졌던 총성과 아이의 웃음소리.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진 강 형사는 일단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305호 자신의 객실로 돌아왔다.

쿠쿵—!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멀리서 둔탁한 천둥 소리가 선체를 미세하게 진동시켰다. 그와 동시에 객실 조명이 순식간에 암전되며 기계가 꺼지는 서늘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어둠 속, 정적을 깨고 소름 끼치는 소리가 객실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뚝. ... 뚝. ...

비가 새는 것일까. 벽면 어딘가에서 바닥으로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강 형사는 조심스럽게 전면 유리창 쪽으로 다가갔다. 창밖은 칠흑 같은 검은 바다 위로 거센 장대비가 퍼붓고 있었다.

그때, 꺼졌던 방 안의 조명이 팟 하고 다시 들어왔다.

유리창에 어둡게 비친 방 안의 풍경.

강 형사의 등 바로 뒤, 불과 한 걸음도 되지 않는 거리에 검은 옷을 입고 바닷물에 흠뻑 젖은 누군가가 서 있는 모습이 창문에 선명하게 반사되어 있었다.

"누구야!"

강 형사가 번개처럼 몸을 돌리며 권총집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뒤돌아본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덩그러니 놓인 침대와 테이블, 그리고 자신의 거친 숨소리 외에는 조용함 그 자체였다. 창문에 비쳤던 형상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그 순간, 벽면 스피커를 통해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승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현재 기상 악화로 인해 해상에 강한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안전을 위해 모든 승객분께서는 외부 갑판 출입을 금해주시고, 즉시 객실 내에 머물러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끝나자 복도는 승객들의 발길이 뚝 끊기며 순식간에 적막에 싸였다. 승객들의 동선이 통제된 지금이야말로 배 안을 몰래 수색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였다.

강 형사는 도 형사에게 연락을 취해 역할을 나누었다. 강 형사는 선원이 수상한 사람을 목격했다고 했던 기관실로 향하기로 했고, 도 형사는 예약조차 되어 있지 않다는 302호 객실을 조사해 보기로 했다.

크루즈 최하층에 위치한 기관실.

거대한 엔진 소음과 육중한 기계음이 울려 퍼지는 어두컴컴한 철제 통로를 따라 강 형사는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비상등의 붉은 빛이 닿지 않는 기관실 맨 구석, 배수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늘진 공간에 이르렀을 때 강 형사의 발걸음이 멈췄다.

철제 바닥 위에 누군가가 버리고 간 듯한 물건들이 떨어져 있었다.

바닷물과 뻘에 흠뻑 젖은 어른용 검은색 운동화 한 켤레. 그리고 그 옆에는...

강 형사는 숨을 멈추고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운동화 옆에 떨어진 것은 바닷물에 젖어 묵직해진 어린아이의 파란색 수영복이었다. 15년 전 포구 사건 수사 파일 속 증거 사진에서 보았던 바로 그 수영복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완벽히 동일한 물건이었다.

"이건... 환영이 아니야. 누군가 실존하고 있어..."

귀신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은 강 형사는 떨리는 손으로 수영복과 신발을 증거로 챙겨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거대한 파도가 크루즈 측면을 그대로 타격하며 선체가 기괴한 소리와 함께 좌우로 급격하게 기울어졌다. 거센 악천후로 인한 심한 요동이었다.

미처 손잡이를 잡지 못한 강 형사는 중심을 잃고 비탈길처럼 기울어진 철제 난간 쪽으로 거세게 내팽개쳐졌다.

팍—!

머리 뒤쪽이 기관실 파이프 단단한 모서리에 차갑고 강력하게 부딪쳤다. 시야가 붉게 물드는가 싶더니, 이내 거대한 어둠이 강 형사의 의식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선배님. 선배님, 정신이 드십니까?"

누군가 어깨를 흔드는 감각에 강 형사는 겨우 눈을 떴다.

창문 너머로 희미한 아침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폭풍우가 지나간 다음 날 아침이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 강 형사는 자신이 305호 자신의 객실 침대에 누워있음을 깨달았다. 머리 뒤쪽에서 깨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옆에는 도 형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컵을 건네고 있었다.

"민준아... 내가 어떻게..."

"기관실로 가보길 잘했습니다. 302호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기관실 쪽으로 내려갔더니, 선배님이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계셨습니다. 기절해 계시길래 겨우 이쪽으로 모셔왔습니다."

강 형사는 통증을 참으며 급히 도 형사의 팔을 쥐었다.

"민준아! 내가 쓰러져 있던 자리에 떨어진 물건들 봤어? 바닷물에 젖은 어른 운동화랑... 15년 전 그 아이의 수영복! 내가 그걸 챙기려다가..."

그러나 도 형사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직하게 응수했다.

"수영복이요? 어른 운동화요?"

"그래! 분명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도 형사는 난감한 기색을 내비치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선배님... 제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수영복은커녕 바닥에 물자국 하나조차 없었어요. 그냥 빈 철제 바닥 위에 선배님이 홀로 쓰러져 계셨을 뿐입니다."

"뭐...라고?"

강 형사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분명 손으로 촉감을 느끼고 눈으로 확인했던 그 축축한 수영복과 운동화.

창문에 비쳤던 검은 형상부터, 예약되지 않은 302호, 그리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기관실 바닥까지.

내가 본 것이 진짜 사람의 공작인가, 아니면 어젯밤 선원이 말했던 것처럼 귀신에 홀려 환영을 본 것인가.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객실 안, 강 형사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혼란과 서늘한 공포가 먹구름처럼 다시 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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