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24. 07:34ㆍ단편집
그날도 이렇게 안개가 자욱한 날이었다.
6층 VIP룸 창문 너머로 짙은 칠흑의 동해 바다를 바라보던 강인국 형사의 시선이 멍해졌다. 위스키 잔을 만지작거리는 유 회장과, 옆에서 소리 없이 수건을 건네는 최 경감의 뒷모습을 보며, 강 형사의 시간은 15년 전 눅눅한 안개가 진동하던 경찰서 수사과로 아득히 떨어져 내렸다.
15년 전, 경찰관 시험에 합격해 수사과 형사로 첫발을 내디디던 날이었다.
다려 입은 형사 기동대 정복의 칼날이 서 있을 정도로 각을 세우고 인사를 하던 풋내기 강 형사 앞에, 짙은 쑥색 가죽 점퍼를 걸친 거구의 사내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당시 수사팀장이자 형사계의 베테랑이었던 최 경감이었다.
"몇 기야?"
"필승! 1083기 강인국입니다!"
강 형사는 관성적으로 각이 바짝 들어간 거친 목소리로 경례를 올렸다. 그러자 최 경감은 텁텁한 담배 냄새를 풍기며 껄껄 웃었다.
"어, 난 603기. 최반장이야~. 잘 부탁한다 후배님~"
장난스레 어깨를 툭 치며 캔커피 하나를 던져주던 사수. 최 경감 역시 해병대 수색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특유의 끈끈한 유대감이 생겨났다.
그 시절의 최 경감은 강 형사에게 단순한 직속상관이 아니었다.
지역 토호들이나 조직폭력배, 유흥업소 업주들의 외압 앞에서도 껄껄 웃으며 "어이, 사장님. 법대로 합시다, 법대로" 하고 튕겨 내던 현장의 거인이자, 형사로서의 뼈대를 만들어준 유일한 우상이었다.
"인국아. 형사 밥 먹으면서 한 가지만 명심해라. 다치지마라. 몸관리잘하고 일 하다가 다치면 너 손해다."
밤샘 수사로 피곤에 지쳐 형사계 딱딱한 소파에 쓰러져 잠들 때면, 살그머니 자신의 가죽 점퍼를 덮어주던 사람도 최 경감이었다. 거친 입담 뒤에 숨겨진 그 깊은 정에 강 형사는 최 경감을 '진짜 경찰'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의 경찰 인생에서 닮고 싶은 유일한 피붙이 같은 선배이자 아버지였다.
당시 관사에서 자취를 하며 겨우 봉급을 쪼개 쓰던 최 경감이, 언젠가부터 시골 형사의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기 시작했다. 친척에게 가문의 유산을 물려받았다느니, 로또에 당첨이 되었다느니 하는 소문이 형사과 내에 무성하게 돌았고, 최 경감은 그저 껄껄 웃으며 넘어갔다.
당시 신참이었던 강 형사는 그 웃음 뒤의 진실을 감히 의심하지 않았다. 존경하는 사수의 말이니 당연히 진실이라 믿었을 뿐이었다.
"인국아, 왜 그렇게 얼어붙어 있냐? 안개 때문이야?"
최 경감의 둔탁한 목소리가 강 형사를 아득한 과거의 회상에서 깨워냈다. 최 경감은 여전히 친근함을 과시하듯 강 형사의 어깨에 손을 올려 툭툭 치며 슬쩍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밤도 늦었는데 일단 한숨 자고, 날 밝으면 차차 시작하자고."
짙은 안개와 정적에 싸인 메모리아호의 3층 복도 너머로, 차가운 바닷바람만이 길게 탄식하듯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